imzizi gathering 《A Night Gathering》
Exhibition
imzizi 1st exhibition <A Night Gathering - Mirror Writing>

Nov 24 - Dec 5, 2023
12:00 - 21:00

Performance
<A Night Gathering - The (three) Gossip>
Co·created by | Kim Monnhi, Imzizi, Ju Hyeyoung

Nov 24 - 25, 2023
21:00
(Running Time | 50min)

The WilloW

This project is supported by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and Seoul Foundation of Art and Culture.


imzizi gathering 《야회》
전시
임지지 개인전 <야회 - 거울쓰기>

2023년 11월 24일 - 12월 5일
12:00 - 21:00

퍼포먼스
<야회 - The (three) Gossip>
공동창작 | 김문희, 임지지, 주혜영

2023년 11월 24일 - 11월 25일
21:00
(러닝타임 | 50분)

더 윌로

주최·주관 | imzizi gathering
협력 기획, 전시 서문 | 한상은
퍼포먼스 서문 | 신재민
공간 협력 | 더 윌로
홍보 디자인 | 한만오
드라마트루그·사운드 디자인 | 정혜린 
제작·설치 도움 | 강성주, 최정우
기록 촬영 | 이소정
고마운 분 | 임성수, Tei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초대되었다고 느낀다면, 그들을 그곳에 가지 못하게 막을 방법은 없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아, 사람들은 문단속한다. 깊은 밤 깨어난 여자는 온몸에 비행을 위한 고약을 바른다. 빗자루를 들고 열쇠 구멍을 통과하거나 더러운 벽난로 속으로 뛰어든다. 여자는 소문이 들려오는 곳으로 날아간다. “뒤집힌 세상”**에서 여자들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춤을 춘다. 끝내 소각되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야회 A Night Gathering》은 두 개의 시퀀스, 전시와 퍼포먼스로 짜여있다.

〈거울쓰기 Mirror Writing〉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세계의 규칙이 되기 위해 만들어 내고 또 불태워야 했던 마녀를 다시 소환한다. 악마의 행위라 여겨졌던 거울 쓰기, 사술,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비행이 여자를 경유해 나타난다. 마녀의 사악한 술수는 지난하게 반복되는 사사로운 집안일과 비스듬하게 닮아있다. 금지된 연회의 동작은 기지개와 구분할 수 없고, 안락했던 모든 것들은 불길해진다. LG 세탁기의 명랑한 알림 벨이 자꾸만 우리를 깨울 때, 여자의 발은 더럽혀져 있다. 먼 곳을 노닐고 온 것처럼.

〈The (three) Gossip〉은 소문과 험담이 되어버린 여자의 몸을 문제 삼는다. ‘가십’은 본래 출산의 고통에 동행하는 여성 친우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산파도 아니고 친족도 아니나, 산모의 열린 몸 곁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함께 걸었다.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것이 공유 가능한 것이 될 때, 골칫덩이의 몸이 잃어버린 몸과 나란히 걷는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상속된 몸이 문젯거리가 된 몸을 넘는다. 유난하고 요사스러운 몸이 모여 허가받지 않은 회합을 연다. 우리의 밤은 부드럽다. 

*그리오 드 지브리 ⌜마법사의 책⌟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photo by 윤관희
퍼포먼스 서문 | 어떤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장 내밀한 곳에서 시작된다

개별적 특수성의 형성은 개개인의 다층성에 기반한다. 나는 이 다층성에 영향을 미친 커다란 이야기들을 역추적하는 데에 관심을 두며, 여성 서사 또한 개별적 특수성에서 공유되는 부정의injustice의 경험을 구조화하여 보편성을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속 분화하고 수렴하는 복수의 여성에 관심을 보여온 작가 임지지의 작업은 특수에서 보편의 재구축으로 향하는 단계에 위치한다. 작가는 전시와 공동창작 퍼포먼스로 구성된 《야회》를 통해 초기 자본주의의 태동으로부터 시작된 구분짓기의 역사가 현대 여성의 일상적 삶에까지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가시화한다. 특히 세 여성이 등장하는 퍼포먼스 〈야회 - The (three) Gossip〉은 개별 여성들의 고유한 서사가 어떻게 공통의 감각을 만들어 내는지를 교차되는 일련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에 종교 부패와 연이어진 악재에 대한 비난의 대상을 찾고자 자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중세부터 근대 초기에 걸쳐 일어났으며 근대 초기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그 형태가 변모했다. 즉,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합리주의에 근간한 근대 자본주의 하에서도 있어왔다. 작가가 참조한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에 따르면, 근대 초기 농업자본주의의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은 노동의 합리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는 성역할에 따른 노동을 구분짓고 여성의 노동을 불임금 노동으로 제한함으로써 여성을 남성에게 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형성된 성역할의 이분법적 구분은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문 또는 험담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 ‘가십Gossip’은 원래 출산에 초대된 여성 친구들을 의미했다. 이는 출산이란 내밀한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돌보는 여성들 간 사적 공동체가 존재했음에 근거가 된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주요 표적 중 하나였던 산파를 중심으로 한 출산 공동체를 와해하고 서로 간의 불신을 초래했으며, 근대 자본주의는 여성의 노동과 활동범위를 집안으로 제한하며 고립과 소외를 만들었다. <야회 - The (three) Gossip>은 과거 남성이 마녀사냥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 냈던 허구인 ‘야회(夜會)’를 여성적 시점에서 재전유함으로써, 여성적 연대와 공동체의 가능성을 회복한다.

작가는 이전 작업들에서부터 한 쌍이지만 동시에 불화하기도 하는 ‘둘’에 초점을 두어왔다. 이번 《야회》의 전시 시퀀스인 〈야회 - 거울 쓰기〉가 ㅡ사회화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과 내면에 마녀적 속성을 내포한 여성으로ㅡ 한 사람 안에서 둘로 불화하는 모습을 통해 야회로 진입하는 장면을 그린다면, 퍼포먼스 〈야회 - The (three) Gossip〉에는 복수의 여성 ㅡ두 여성, 그리고 둘과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한 여성ㅡ 이 등장한다. 어떤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장 내밀한 곳에서 시작되며, 가장 내밀한 이야기는 종종 골칫덩이로 치부되는 것들이다. 여성의 연대와 공동체는 가장 내밀한 것, 골칫덩이가 공유될 때 가능하다. 골칫덩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가치로 환원될 수 없거나 노동의 가치를 절하 또는 거부하는 것일 수 있는데, 마녀사냥이 자행된 때 이는 자본주의가 지정한 정상성의 범주 바깥에 놓인 마녀의 속성이라 여겨졌다.

〈야회 - The (three) Gossip〉에 등장하는 한 여성은 충분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서비스업 노동자이다. 자본주의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의 기준에 끊임없이 맞춰가는 과정에서 탈각한 다수의 파편들을 ‘잃어버린 몸’이다. 파편을 그러모아 역추적하는 과정의 끝에는, 탈고정적인 몸의 원형이 있다. 다른 여성은 사회화의 요구에서 자의적으로 벗어나 있다. 여성의 노동인 재생산 노동을 거부함으로써 분리를 거부한 몸이며, 탈각해야 할 골칫덩이를 여전히 그러안고 있는 ‘골칫덩이의 몸’이며, 경계를 흐리는 불순한 몸이기도 하다. 나는 작가가 이 두 여성 간의 불화를 그리려 했다기보다, 둘을 통해 여성 공동체의 가능성을 해체하고 묵인해 온 역사와 불화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본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세 번째 여성은 관객에게 골칫덩이를 안겨준다. 범주 밖의 마녀적 속성을 탐닉하는 욕망의 장소이자, 내밀한 골칫덩이를 공유하는 이 야회의 장소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녀는 ‘각자의 방식으로 머물기’를 택함을 제안함으로써 골칫덩이를 대하는 관객의 주체적 태도를 유도한다. 

퍼포먼스 안에서 두 여성이 이끌어나가는 전개는 야회를 향한 남성적 시선을 비웃듯 그 경계를 아슬아슬 횡단하며, 현대 여성의 일상적 모습과 과거 야회와 관련해 구전되어 온 금기의 행위들을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들로 관객을 교란시킨다. 터부시된 장소로 향하기 위해 모두가 잠든 밤 몰래 타인의 몸을 넘어 방 안을 빠져나가는 여성은, 잠든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자리를 뜨는 여성의 모습과 교차한다. 야회에서 행해졌다 전해져온 온갖 악행과 악마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빗댄 행위들은 여러 일상적 행위들과 겹쳐지며,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구분짓는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골칫덩이의 몸과 잃어버린 몸이 나란히 걷는 후반부는 여성적 표현이라 여겨져 온 부드러움의 재개념화로 몫 없는 자들의 언어를 만든다. 자칫 환원적일 수 있는 ‘고통은 부드럽다’라는 문장이, 골칫덩이의 몸을 경유해 관객을 만난다. 수행적 발화는 골칫덩이의 몸이 내재한 다층성을 경유해 문장에 무게를 더한다. 문장을 마주한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본인이 내재한 골칫덩이를 바라본다. 수용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탈각할 것인가. 불화를 대하는 입장은 선택할 수 있다. 원하는 모습으로 머물 수 있다.

글 신재민 (더 윌로 큐레이터)